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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사회를 개편하는 노동자운동
[기고] 민주노조운동 혁신 ③
김삼연/이경석 메일보내기

“위기라는 것은 한 시대가 다른 시대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할 때, 노동자운동은 실천적인 구성운동을 해야 하며 개별의제에 한정적이지 않은 포괄의제를 제출해야 한다.” 지난 17일 민주노조운동 혁신을 주제로 제1회 프로메테우스 포럼이 열렸다. 지금 민주노조운동의 위기와 혁신 논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포럼 참석자 기고를 통해 노동자운동의 현 상황을 분석하고 노동자들이 왜 보편의제 노동자운동을 해야하는지 방향과 과제를 짚어본다. -편집자 주-

① 민주노조운동의 위기와 혁신 논의
② 노동조합운동과 시민사회운동
③ 노동사회를 개편하는 노동자운동
④ 노동조합이 펼치는 연대공동체 운동
⑤ 왜 보편의제 노동자운동인가

배제와 통합

현존 경제사회는 노동사회라 말할 수 있다. 곧 ‘노동’을 매개로 하여 ‘노동의 관계’로 구성되는 사회이다. 현존 사회일반을 그 총체성에 있어서 노동사회라 말할 수 있기 때문에, 노동사회란 현존 사회의 제1규정이다. 여기에서 ‘노동’이란 사적 노동이 아니며, 사회적 노동, 곧 상품을 생산하는 노동이며, 여기에서 상품을 생산한다 함은 화폐로 교환되어 사회적 질을 인정받고 사회적 양으로 표현된다는 뜻이다.

노동사회의 주체는 노동자이다. 현존 경제사회에서 사람은 오직 노동할 수 있을 경우에만 주체가 될 수 있다. 개인은 노동을 통해 경제사회에 통합되며, 또한 노동을 통해 경제사회로부터 배제된다. 전자는 고용, 후자는 실업이다. 그러나 고용노동자의 경우 비록 경제사회에 통합되어 있지만 생산과정의 통제 및 생산물 분배에 이르기까지 경제사회 내부의 각종 하위 범주로부터 배제 당한다. 이 경우에 고용노동자를 배제하며 통합시키는 매개자도 물론 노동이다. 실행노동은 노동이기 때문에 노동사회에 통합되지만, 구상노동이 아니기 때문에 노동사회의 통제권력으로부터 배제된다. 분배의 문제에 있어서의 차별, 생산물 전유의 문제도 노동을 매개로 해서 이루어진다. 노동사회에서 노동은 배제적 통합의 각종 층위에서 매개이자 척도의 역할을 한다. 노동자는 노동을 매개로 하여 노동사회에 배제적으로 통합된다. 반면에 실업이란 노동사회로부터 전적으로 배제된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나 실업자도 국민 자격을 유지하는 한에서 국가사회에 통합되어 있기에, 사회 전체로부터 배제되어 있지는 않다. 실업자는 국가를 매개로 하여 배제적으로 통합된다.

노동사회 바꾸기와 노동사회로부터 벗어나기

19세기와 20세기의 노동자운동이 입버릇처럼 외쳤던 노동 해방은 억압적 사회질서, 끊임없이 반복을 재촉당하는 노동, 항상적인 생존의 위협, 죽지 않을 만큼의 임금, 부속품처럼 취급되는 비인간적 대우 등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했다. 노동자들은 해방을 위해 투쟁했다. 그래서 노동 기본권 신장을 이루어내었고, 불완전하지만 정치적 시민권도 일부 획득하였다. 하지만, 노동사회 자체로부터는 해방되지 못하였다. 아니 노동하지 않는 사회적 삶은 상상할 수 없었다. 때문에 ‘노동’은 신성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한때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마라’라는 구호소리가 높았다. 자본가를 향했던 그 구호는 무노동, 무임금이라는 실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현재를 살아가는 모두는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상상하지만, 노동사회의 현실은 ‘노동’을 매개로 하여 강고하게 유지될 뿐이다.

임금노동으로부터 벗어나기가 어떠한 사회형태를 띨 것인지는 불명확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노동사회로부터 벗어나기란 불가능한 것인가? 그러나 과거 노동자운동의 경험은 적어도 우리가 노동사회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노동사회를 유지하면서 소유제도만을 변경하는 것으로 노동사회로 벗어나기가 가능하지 않았듯이, 노동거부처럼 노동사회 밖으로부터 노동사회를 벗어나게 할 힘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노동사회로부터 벗어나기는 노동자운동이 노동사회 개편능력을 획득할 것을 전제한다. 현존하는 노동사회가 봉착한 문제를 해결하고 노동사회를 개편하는 일이야말로 노동사회 넘어서기를 위한 운동의 전제조건인 것이다. 노동사회의 경계를 넘어서는 정치도 이와 같은 당면한 개편 문제의 해결 속에서만 현실의 정치일 수 있다.

노동사회 바꾸기를 통한 노동사회 넘어서기

포괄적 사회프로그램을 갖는 노동자 운동의 실천을 통해 노동사회를 재편하고 노동사회를 넘어서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고 했을 때 현재 그 구체적 실천 방향은 무엇인가? 그것은 지금까지 ‘고용’과 ‘임금’, ‘복지’에 착목해왔던 운동을 산업재편의 문제를 포함한 노동사회 전체에 관련된 재편 운동으로 전환시키고 확대해낼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이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동조합에 대한 인정, ‘고용’과 ‘임금’, ‘복지’ 등으로 표현되는 기본권은 일정하게 획득되었다. 노동배제적 경영을 추구하던 자본은 ‘신경영전략’을 통해 노동자들을 ‘기업의 구성원’으로 재편하는 한편, 노동자들의 분할과 경쟁 유도를 통해 노동조합을 와해하려 하였다. 하지만, ‘임금’과 ‘복지’ 그리고 ‘고용’이 유지되는 투쟁을 전개했던 노동자운동은 새로운 경영 전략에 대해 효과적인 방어를 하지 못했으며, 기업별 노조운동은 일정한 한계를 드러냈다. 더 이상 ‘임금’과 ‘복지’는 인간다운 삶을 위한 투쟁의 목표가 되지 못했다. 이러한 때에 노동자운동이 더 큰 문제로 맞이한 것은 외환위기, 그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의 확대 속에서 드러났던 산업재편과 구조조정 문제였다. 대규모 정리해고 사태로 인해 ‘고용안정’은 노동자운동에 있어서 절대적 투쟁과제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산업 재편과 구조조정에 대한 노동자운동의 원칙과 관점을 확립하는 문제가 제대로 인식되지 못한 채 진행된 투쟁은 ‘일자리 나누기’와 ‘노동강도의 감수’, ‘임금, 복지 후퇴의 감수’ 등 수세적인 ‘고용안정’ 투쟁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으며, 이러한 상황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또한 이러한 ‘고용안정’ 투쟁의 수세적이고 방어적인 대응은 비정규직, 여성,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배제를 통해서만 이루어지고 있다는 측면에서 반동적인 성격까지 내포하고 있다.

물론 현 상황은 노동자들을 벼랑 끝으로 내몬 정부와 자본에게 무엇보다 일차적 책임이 있다. 하지만 노동자운동 스스로 노동사회를 재편하기 위한 원칙과 대안을 만들고 이를 관철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수세적 국면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노동자운동이 산업일반의 문제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개입하여야만 한다면 노동조합은 과연 어떤 과제를 짊어져야 하는가? 

산업의제와 고용의제

노동조합은 산업문제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야 한다. 무엇보다도 산업문제는 고용문제와 분리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산업문제가 고용문제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한, 고용안정에만 집착하는 전략은 경제적 합리성의 채찍을 견딜 수 없다. 가장 오래 지속가능한 일자리는 환경친화적이고 경쟁력 있는 산업의 육성을 통하여 보장된다. 노동조합은 정부의 산업정책이 이러한 방향을 지향하고 있는가를 주시하고 나름대로의 대안적 산업재편안을 제출해야 한다. 나아가서 사회적으로 유용한 일자리, 질 높은 일자리, 사회적 빈곤을 극복하는 대안으로서 일자리를 창출하도록 정부와 기업을 압박해야 한다. 노동자 다수가 비정규직이 되어 버린 상황에서 노동조합부터 평생직장이 아니라 평생직업의 개념으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노동조합은 노동시장에서의 평등적 이동과 재진입이 용이한 정책, 노동교육권을 보장하고 평생교육을 체계화하는 제도, 수준 높은 직업교육을 통해 취업능력을 향상시키는 정책 등을 정부에게 요구해야 한다. 노동조합은 산업정책 및 고용정책의 측면에서도 사회 양극화와 빈곤 해결의 대안적 사회세력으로서 발언력을 높여야 한다.

생산 현장의 문제에 대한 접근도 마찬가지이다.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작업장 통제권, 노동강도 강화에 대한 대응도 동일한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산업사회의 구조가 변화하고 있지만, 한국의 생산현실은 이와 같은 불가피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낡은 방식에 의한 생산효율성만을 강조함으로써 비인간적인 노동조건과 처우를 낳고 있다. 노동조합의 문제 제기는 노동 강도의 완화와 같은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차원에 한정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생산체제 자체에 대한 대안을 노동조합운동이 스스로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생산의 효율성 문제뿐만 아니라 생산현장에서 노동의 인간화에 대해서도 노동조합은 대안을 제출해야 하며, 대안적 생산체제에 관한 문제의식을 사회적으로 확대시켜 나가야 한다.

보편의제 노동자운동과 노동사회 재편

작업장 통제권이라는 매우 부분적인 문제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현재의 반노동자적인 생산체제는 단시일 내에 바뀌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의 노사관계는 적대적이고, 특히 기업과 자본가들은 노동배제적 노무관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배제적 관리방식은 노사관계를 적대적인 갈등관계로서 증폭시켰다. 그래서 노동조합운동이 제기하는 대안에 대해서 개별 기업적 차원이나 전체 자본진영 차원에서 과연 합리적으로 받아들이겠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매우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제는 즉각적 실현가능성이 아니다. 문제는 사회적 인식의 확장과 사회적 동의 속에서 노동조합이 얼마나 기업과 자본진영에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가일 뿐이다. 즉 사회적으로 노동조합운동이 얼마나 발언력을 가질 수 있느냐, 이데올로기 공세의 측면에서 노동조합운동이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얼마만큼 대응할 수 있으며, 어떻게 담론적 공세로 전환할 수 있는가의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노동조합운동이 산업전반에 대한 재편 전략, 산업적 대안을 제출하고 사회적 동의를 획득해 가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과정을 생략하고 부분적으로 노동과정상의 통제에만 과업을 집중하는 방식으로는 노동조합은 작업장 통제권조차도 획득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노동사회 개편을 위한 노동조합운동은 산업현장의 부분적인 문제에만 매몰되지 않아야 한다. 그 대산에 산업구조에 대한 전반적 이해에 입각하여 산업 재편에 대한 총괄적 입장을 제출하고, ‘고용형태’와 ‘임금’에 대한 총체적인 관점을 확립하며, ‘사회적 복지’에 대한 포괄적인 프로그램을 제출해야 한다. 노동자운동은 현 시기에서 노동사회를 개편할 포괄적 사회경제적 프로그램을 제출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노동사회 재편을 위한 노동자운동은 노동사회의 특정분야나 특정 결절점에만 집착하는 운동이 아니라, 노동사회의 모든 문제를 연관된 전체로서 사고하는 보편의제 노동자운동일 수밖에 없다.

김삼연 전국노동자회 사무처장
이경석 전국노동자회 비정규사업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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