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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대 총선이 좌파진보정당에게 던진 책무
시사초점 <72>
김영규 메일보내기

제19대 국회의원선거가 막을 내렸다. 과거와 다름없이 우파보수정당들이 의석을 독식하는 선거판이었다. 의석수를 기준으로 계산해 보면, 단 하나의 의석도 진보정당에게 뺏기지 않은 채 300석 모두 보수정당들에게 돌아갔다. 새누리당, 자유선진당 등 넓은 의미의 여권이 158석,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 등 야권이 142석을 사이좋게 갈라 먹었다. 정당득표율이라는 다른 잣대로 계산해 보면, 보수야권이 약간의 차이로 승리했다. 새누리당 등 보수여권이 46.03%를 얻고 민주통합당 등 보수야권이 46.75%를 얻어 백중지세였다. 보수양당 구도를 지켜 준 득표율은 총 92%를 넘어 가히 압도적 지지였는데 반해, 이번 총선에서 유일한 ‘독자적’ 진보정당이었던 진보신당은 1% 수준의 지지율을 얻는 데 그쳤을 뿐이다. 이런 보수 독식의 선거 결과는 대중의 의식이 극우 잔영인 제국주의 신식민지에 얽매어 있고 신자유주의적 경제주의에 함몰되어 있다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이번 제19대 총선이 한국의 미래를 위해 지닌 의미가 한 가지 있다. 그것은 투표율이 제18대보다 8.2%나 높아 과반을 넘는 54.3%라는 점이다. 지역으로는 서울, 경기, 인천 등 중부권에서, 연령으로는 보면 20대에서 투표율이 상당히 높았다. 투표율의 상승에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작용한다. 하지만 최근 자본주의의 금융공황 등 경제위기로 인한 궁핍화 심화를 반전시키고자 유권자들이 투표장으로 향한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고 보는 것이 과학적일 것이다. 이것은 선진 자본주의 일반의 투표 성향과 비슷하다. 국가의 경제난이 가중될수록 ‘계급 투표’의 경향이 강해지기 때문에 불만이 많은 지역과 연령의 투표율이 높은 것이다. 따라서 진보정당이 총선이든 대선이든 역점을 두어야 할 공약은 기본적으로는 자본주의의 경제위기로 인해 자본이 대중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영역(정리해고, 비정규직, 높은 실업률 등)과 관련된 것이어야 하며, 부수적으로는 재벌 위주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대중의 생활권을 침탈하는 영역(개발 정책, 물가 상승, 환율 인상, 복지 후퇴 등)과 관련된 것이어야 한다. 이때 비판을 넘어 대안을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지금 삼성 재벌가는 과거의 유산 분배 문제로 소송이 제기되고 있는데, 진보 진영의 ‘재벌 해체’ 강령에서는 1000억원(약 1억 달러)을 넘는 유산에 대해서는 전액 상속세로 징수하자는 등 획기적인 정책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한편 총선에서 진보신당이 얻은 1%의 지지는 너무나 초라한 성적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변화를 진정으로 바라는 1%의 유권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선거를 통한 변혁을 열망하고 있는 진보적 대중이 독자적으로 변혁을 개척하겠다는 의지의 반영이라 하겠다. 따라서 진보신당은 향후에는 출마수를 늘리고 집중해 당선 가능성을 높임과 동시에 정당 득표율을 높여 해산 개연성을 줄여야 할 책무가 있다. 등록이 취소된 진보신당은 지금 어떤 ‘새로운’ 진보정당을 결성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엄중한 시기이다. 진보세력은 먼저 이번 총선의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면서 심기일전의 각오로 전진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진보정당이 선거 시기(이는 과거와 다름없는 엄중한 혁명 시기이다)에 대중의 지지를 획득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당명이 문제일 것이다. 지금 한국에는 ‘진보’라는 말이 언론의 농단 탓에 대중에게는 사실상 친근한 용어로 다가서고 있다. 그런 점에서 진보란 말을 당명에서 지운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언론이 진보라는 말을 마구잡이로 쓰고 있는 행태 때문에, ‘좌파’라는 표현이 결합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새로이 결성되는 진보정당이 ‘좌파진보당’이라면 자본주의를 폐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정파임을 틀림없이 드러낼 것이다. 그렇지만 자본주의를 폐기한 후 한국 사회에 어떤 이념적 변화를 초래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자연스럽게 제기된다. 최근 유럽권의 이념적 동향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도움이 되는 사례는 지금 신자유주의가 후퇴하는 프랑스에서 사회당과 좌파전선이 지향하는 이념이다. 특히 ‘좌파전선’은 지금 치러지는 대통령선거에 도전하기 위해 공산당과 좌파당이 연합한 정당이다. 이 좌파전선의 당수는 장 뤽 멜랑송인데, 그는 지난 1월의 5%대에 불과하던 지지율을 최근 15%까지 높이는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멜랑송은 ‘급진 좌파’로 분류되고 있다. 급진적인 그의 이념이 대중의 지지를 받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공황을 거치는 동안 나타난 우파보수정치권의 무능과 타협에 대한 반발이다. 우파 사르코지 대통령의 집권 기간 동안 실시되었던 긴축정책은 오히려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이에 대해 멜랑송은 분배 정의를 위해 긴축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주장한 유일한 후보인 점에서, 기본소득의 도입을 주장하고 있는 한국의 좌파와 유사하다. 그는 연간 소득 기준 36만유로 초과분에 대해 100% 과세하고, 최저임금을 거의 50% 인상시켜 1700유로로 하자는 안을 내놓고 있다.
‘좌파진보당’의 과제는 ‘좌파적’ 가치의 정립이다. 지금껏 좌파가 사수한 가치는 노동의 생산력을 기조로 하는 생존권 사수(개인)이며, 이것을 토대로 생산관계에서 확립되는 사회정의(집단)의 실현이다. 생존권이란 기본권은 실질적 가치인 반면, 정의는 당대적 판단이 필요한 가치인 만큼 사회(공동체)의 민주적 결정이 요구된다. 이에 좌파적 민주주의는 자유보다는 평등을 중심에 두며, 그런 평등을 인본주의적 박애로 실현해야 한다. 사회정의처럼 모두를 평등하게 대우하는 공공성의 강조는 사회 전체를 민주화하는 초석이다. 노사평등주의야말로 좌파가 반드시 관철해야 할 사회관계이다. 또한 ‘좌파진보당’은 정치세력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부유세의 도입과 부자 증세(버핏세)로 대중들의 지지를 획득해야 한다. 물론 ‘좌파진보당’은 정치세력화가 실현되면 부의 평등을 지속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 예컨대 조세 개편으로 늘어난 수입을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 이주자, 실업자, 여성, 청년 등의 지위를 향상시키기 이동권, 노동권, 보육권, 교육권 등이 무상으로 실현되도록 지출해야 한다.

나아가 ‘좌파진보당’이 준비해야 하는 문제는 억압당하고 착취당하는 대중을 최우선 대상으로 하는 강령과 정책의 개발이다. 이번 선거에서 진보신당은 탈핵, 탈삼성, 탈학벌, 탈비정규직, 탈FTA등 한국 사회의 광범위하고도 뿌리 깊은 사회적 문제들을 제기했다. 이러한 사회문제들은 일찍이 공동투쟁본부가 형성되어 대중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고 수용될 수 있는 성질의 이슈들이다. 그러나 모든 유형의 공동투쟁본부의 조직과 운동은 선거 때만 되면 보수야권의 ‘대안 없는’ 심판론이자 당리당략인 반MB에만 머물렀지 반보수로 나아가지 않는다. 공동투쟁본보를 형성하고 있는 주요 단체들이 ‘중립’을 표방하고 있지만 거의 개량주의 내지 시장개혁에만 매달리는 비좌파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좌파진보당’은 타협적인 용어인 ‘탈脫’ 대신에 ‘반대, 폐지 혹은 규제’ 등으로 정리해야 할 것이다.

우파보수세력들은 총선이 끝나자마자 대통령선거에 돌입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정권 재창출을 위해 박근혜위원장을 중심으로 대선을 준비하고 있으며, 민주통합당은 문재인, 정세균 등이 대선에 출마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들 보수정당들이 지금 초미의 관심을 보이고 있는 바는 안철수 교수(이명박 대통령보다는 젊고 깨끗한 기업인)의 대선 도전이다. 또한 민주통합당은 정권 창출을 위해 야권 연대의 연장선에서 통합진보당에게 후보 단일화를 촉구할 것이며 사표 방지를 위한 전술도 구사할 것이다. 그러나 ‘좌파진보당’은 이들 보수 세력과는 달리 독자적인 후보를 출마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좌파진보당’은 지난 4년간 노동자민중의 투쟁 현장에서 올바르게 투쟁을 선도한 인물을 추대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하나의 조건이 있다. 그녀 혹은 그는 과거에 민주노동당이나 지금의 통합진보당에 기웃거리지 않고 지금까지 위에서 제기한 좌파의 과제에 엄중히 복무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김영규 / <이명박 정부 비판과 대안 시리즈(전3권)> 저자, 전 인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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