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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ㆍ시민사회 진영과 대결하는 정치구도를 모색해야 한다 ①
시사초점 <57>
김영규 메일보내기

올해 추석을 전후로 하는 한국의 정치경제 지형은 차례상 차리는 예년처럼 그렇게 한가롭지가 않다. 가까이는 서울시장 선거가 다음 달인 10월로 목전에 닥치고 있으며, 멀리는 내년에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를 염두에 두어야 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의 모든 정파와 정당은 향후 선거 행사에서의 입지 강화와 더불어 승리를 다짐하기 위해 통합과 연대, 배제와 독자라는 새로운 이합집산에 벌써 돌입해 왔다.

그런데 한국의 정당들은 이번 달 초에 정치적 복병과 조우했다. 그것은 안철수 교수의 소극적인 정치 진출 의도에 이은 박원순 변호사의 적극적인 정계 진출 선언이다. 이로 인해 기존의 정당들은 진용을 새롭게 짤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렸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 보수 정치권은 서울시장 후보로 등단한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로부터 정치적 ‘지도력’에 관한 한 무자비할 정도의 ‘철퇴’를 맞았다. 보수 진영에서 가장 다급한 것은 물론 한나라당이다. 한나라당은 지금 박원순의 대항마로 서울시장 후보감을 당 내외로 물색하고 있지만 그리 쉽게 성사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박원순은 종래 보수 정치권에서 다크호스로 알려진 인물이어서 언제 정계에 입문할 것인가만 문제였다. 그도 과거 독재 정권으로부터 억압과 차별을 당한 인사로서 일찌감치 재야인사로 공인을 받아 왔다. 그는 참여연대라는 시민운동을 전개했을 당시만 해도 이전투구의 보수 정당들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시민 정치 이력을 쌓아 갔다. 그러나 박원순은 자신의 재야 경력을 수구로 ‘굴절’시키는 행동을 하게 된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을 하던 시절에 그로부터 재정적 후원을 받는 등으로 우익 수구파와 가까이 지낸 것이다. 박원순은 그 후 이명박 정권 하에서 국가정보원이 벌인 자신에 대한 민간사찰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등으로 다시 재야 운동가로 복귀하는 등의 행보를 밟아 왔다.

이명박 정권과 비록 소통은 하지만 크게 실망한 박원순은 그 자신이 볼 때도 보수 세력인 민주당과 이번 서울시장에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할 것을 약속했다. 그에게 단독 후보의 힘을 실어 준 것은 지난 9월 2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출마 포기와 같은 날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한명숙 전 국무총리와 함께한 야권 후보 단일화를 위한 기자회견이었다. 이어서 한명숙은 9월 13일에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힘으로써 서울시장 야권 후보로 박원순이 거의 독주하다시피 하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더하여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9월 13일 박원순을 만난 자리에서 자당의 시장 후보 출마 예정자로 천정배, 추미애, 원해영 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입당을 권유했다. 그러나  그는 이를 거절하였다. 박원순은 보수 정당 후보임을 포기하고 오히려 시민 후보로 출마할 것인 양 선언했다. 그러나 우리가 볼 때 시민 후보도 동일한 ‘정당 후보’이다. 다시 말해 그가 정치 활동인 시장 선거에 출마하는 만큼 박원순이 마치 새로운 지도력이라고 각색하고자 하는 ‘시민 후보’도 본질은 예컨대 희망제작소라는 ‘정당’의 후보인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당, 국민참여당 등 보수 정당과 마치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듯한 박원순 독주 체제에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가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이와 더불어 민주당은 최근 자당의 지지세가 하락하는 걸 막기 위해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을 빌미로 야권 통합에 나설 기미가 여전하다. 민주당과의 보수 야권 연대에 적극적이었던 민주노동당이 박원순 같은 야권 통합 후보에 대해 어떤 입장을 보일지가 역시 주목된다. 여기에서 민주당이 한나라당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먼저 다른 보수 야당들을 통합해 지지세를 불리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그렇지만 민주당과 야당들과의 통합이나 연대가 쉽지 않은 것은 당권, 당직, 위원장 등을 놓고 협상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진보 정당(좌파 변혁 정당)이 박원순의 시민사회 정당과 다른 명백한 차이점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우선 전자는 후자가 결코 행동하지 못하거나 접근할 수 없는 철학적, 사상적, 나아가 이념적 지향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진보정당은 예컨대 그것이 마치 생존권처럼 지켜 왔던 ‘사회변혁’이라는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 사회변혁이란 사회의 총체적이고 전반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개념이며, 보수 반동적인 사람들은 그것을 실현 불가능한 이상일 뿐인 것으로 간주한다. 시민사회의 정당도 물론 ‘사회의 변화’를 추구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미 ‘낡아 버린’ 시민사회에 충실해 법적ㆍ제도적 한계로 환원되는 변화만을 추구할 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보수 정당도 시민 정당과 마찬가지로 기존의 체제와 질서를 ‘금과옥조’로 지키되 상황의 변화에 부응해 당리당략적 변화만을 수용하거나 개량주의적 변화도 이따금 환영할 뿐이다. 시민운동과 보수운동은 자본의 운동 법칙이라는 동일한 ‘뿌리’에 기초하기 때문에, 변화가 필요한 인간적이고 노동적인 요구를 기존의 사회체제(시스템)보다 우위에 두거나 그것을 무효로 할 수 있는 변혁적인 노선을 결코 발견할 수가 없는 것이다.

김영규 / 인하대 행정학과 교수, <이명박 정부 비판과 대안 시리즈(전3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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