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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사회복지 담론은 자유·개인주의 심화를 부채질할 뿐 ③
시사초점 <29>
김영규 메일보내기

보수 여야의 정치권에서 내년도에 예정된 선거를 위해 선거용으로 일찌감치 꺼낸 복지 논쟁은 누가 이기든 지든 혹은 양자가 타협하든 상관없이 자본주의 자체의 ‘사회안전망’ 논쟁일 뿐이다. 복지가 자본의 안전망, 나아가 권력의 안전망으로 부각된 것은 신자유주의의 차별과 착취가 심화되면서 부터이다. 신자유주의와 노동의 모순이 심화되면서 이를 완화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복지인 만큼, 복지는 지금까지 근로민중의 저항을 희석시키고 노동자계급의 파업을 억제시키는 역할을 해 온 셈이다. 이런 신자유주의 복지정책이 역시 한국에서도 안전망 역할을 하게 된 것은 김대중 이래의 보수정치권이 1997넌 ‘IMF공황’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그 후 복지는 국가가 ‘용돈’으로 생색만 낼 뿐인 제도로서, 오히려 대중 일반의 고통스런 삶을 더욱 측은하게 만들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지는 지금까지 대중이 정치권의 억압에 대한 반란은 물론이고 경제적 착취에 대한 분노조차 꾀하지 못하게 막는 역기능을 수행했던 것이다.

이처럼 한국에서 복지정책은 선진적 대중이 혁명이나 선거로 현존 권력을 진보적 권력으로 교체하는 것을 예방하는 안전판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반동적인 안전판에 대한 국가사회적 정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우선 안전판에 대한 광의의 정의는 그것이 기존의 독재 권력이나 보수 정권이 과거의 필리핀이나 최근의 튀니지에서처럼 대중의 혁명에 의해 붕괴되는 위험을 사전에 방지하는 법률적 제도와 정치적, 경제적 질서를 의미한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국가마다 존재하는 협의의 안전판이란 그런 대중 혁명이 정치적으로 조직되고 과학적으로 실천되는 것에 맞서서 정권의 향배를 그런 혁명 이전에 선거로 승부하도록 유인하는 각종 정책을 의미한다. 모든 자본주의국가에 필요한 복지정책은 이처럼 협의에 속하는 수단 가운데 하나로서, 그것은 국가의 책무 가운데 다섯 번째 기능인 ‘일반복지의 고양’에 해당된다. (김영규, 『이명박 정부 비판』, 2008, 제5장 참조.)

복지정책에 관한 위의 정의를 기초로 해 자본주의 정권의 현실을 파헤쳐 보자. 자본주의 선진국들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의 경우, 복지 지출이 정부의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20% 수준이다. 이것은 정부가 국민의 복지를 위해 쓰는 비용이 한 해에 국민이 번 총 소득의 5분의 1에 해당될 정도의 고액 비용임을 의미한다. 이에 비해 한국의 2011년 복지 비용은 높아야 GDP의 7%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한국과 같이 ‘한자리 수’ 복지 후진국은 현대적 의미의 발전된 모습인 ‘민주공화국’이라고 부르기도 힘들다. 오히려 한국이 설립 당시 주역을 본 딴 ‘국기(國旗)’에 어울리게 ‘봉건공화국’이라고 부르는 게 그것의 정체(正体)에 어울린다.

GDP 7%라는 낮은 수준의 복지 세계에 살고 있는 한국의 대중들은 2012년 선거에서 하나의 중대한 결심을 해야 할 계제에 이르렀다. 지금의 복지 수요를 더욱 폭넓고 깊게 채우는 이른바 ‘보편적 복지’ 내지 ‘사회적 투자’- 투자에 관해선 아래를 참조하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개인의 임금에 추가되는 성질인 ‘사회적 복지’를 새로이 짤 것인가를 결정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일반적 의미로 통용되는 사회적 복지를 지금 사회당에서는 ‘기본소득’이라고 불러 지난해 6 · 2 지방선거와 그 후 은평을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국가의 복지정책으로 채택할 것을 국민에게 약속한 바 있다.

우리는 보수 야권 진영에서 주장하는 공적 부조인 ‘보편적 복지’의 문제를 그것의 개념, 범위, 방식, 재원 등을 기준으로 아래와 같이 분석해 볼 수 있다.

우선, 보편적 복지란 지금 이명박 정권하에서 실시되고 있는 바와 같이, 일정한 수혜 조건에 해당되는 빈민, 노년층, 장애인 등에 한해서 실시하는 ‘선택적 복지’와는 다르다. 보편적 내지 사회투자적 복지의 개념은 수혜 대상을 그런 필요조건을 갖춘 사람들만이 아니라 모든 시민들에게로 넓히는 개념의 복지제도로 하자는 것이다. 이에 해당되는 가장 전형적인 사례가 무상급식이다. 이에 한나라당은 “부잣집 아이들에게까지 무슨 무상급식이냐”고 비판한다. 무상급식은 학생 자녀를 둔 청장년층에게는 아주 절실한 혜택이 될 것이다. 지난번 교육감 선거에서 개량주의적 후보들이 무상급식을 내걸어 성공했던 이유는 바로 이들의 표심에 있었다.

둘째, 무상복지를 어느 부문으로까지 확대하느냐에 따라 그것의 범위가 늘어나거나 줄어든다. 지금 민주당은 보육, 급식, 의료(무상 범위 확대), 심지어 대학 등록금 절반 축소(3+1 복지)까지로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제기하는 것처럼, 소요 재원의 규모와 예산의 확충 방안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여기에는 해마다 예산을 짤 때처럼, 분명 이익이나 손실을 보는 계급 · 계층간의 갈등과 타협의 이해관계가 존재한다. 이럴 경우 기존 재원의 배분뿐만 아니라 새로운 재원의 개발 등 예산 확충 수단이 제기되어 계급 간 이익과 손해가 엇갈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나라당은 궁지에 몰려 있다. 우선, 타협하기엔 글러버린 날치기 통과 때문이고, 또한 진보정당의 공세인 부자 증세 요구를 수용하기에는 정권이 막바지인 것이다.

셋째, 복지 혜택을 주는 방식에 관한 한, 보수 야당들 간에는 크게 차이가 없다. 그것은 대체로 현물 방식이며 그것의 공급을 위해선 가급적 시장 메커니즘을 이용하자는 주장이다. 노무현 정권은 신자유주의를 수용해 사회적 투자의 핵심인 ‘인적 자본’에 대한 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논리에 지배되었다. 그것은 향후 생산과 성장에 기여할 아동이나 청소년을 주요 복지 대상자로 지목하는 한편, 국가가 현금을 지급하는 방식보다는 현물인 급식이나 보육과 같은 사회서비스를 제공하자는 것이다. 그것도 소비자에게 ‘바우처’ 형식으로 지급하는 게 아니라 서비스 생산자인 학교나 보육원에 지급하는 것이다. 이럴 때에도 국가 주도의 전달이 아니라 보육 시장을 조성해 규제 완화를 통해 민간자본의 영리 공간으로 만들자는 논리이다. 그러나 이것은 소비자 선택권을 묵살하는 것이며, 보육원 간 과당 경쟁이 일어나 마침내는 가격 담합이 일어날 확률이 크다. 그러나 경제학의 원리(예산선과 소비자 선택원리의 결합에 관한 모형)에 따르면, 어떤 경우든 현물 서비스보다는 현금 이전이 소비자에게 더욱 큰 효용을 준다는 것은 상식이다.

넷째, 끝으로는 복지 재원의 조달에 관한 문제이다. 이명박과 한나라당에서는 보수야당의 복지론을 ‘포퓰리즘’(대중인기주의)이라고 비판한다. 복지 담론을 이처럼 흠집 내기 위해 쓰는 수법은 다양한데, 특히 복지 재원의 합리적 조달 없이 그것의 지출만을 강조하는 ‘장미빛’ 공약을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는 것이다. 복지를 사회안전망이라고 부르는 의미를 되새겨 볼 때, 복지의 강화는 집권 여당에게도 유리한 제도인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실업과 불완전 노동 등 낮은 수입으로 보육, 교육, 의료 등의 높은 가격으로 고통 받는 국민들을 위해서도 ‘무상’ 복지를 늘리는 한편, 불요불급한 4대강, R&D, 국방 예산을 대폭 줄여야 할 것이다. 또한 현 정부가 법인세, 소득세, 재산세 등에서 ‘베풀었던’ 부자 감세를 원위치 시키는 한편 상속세, 증여세, 소비세 등을 강화하게 되면, 적어도 10조원(이것은 보수 여야간 충돌하는 보편적 복지 재원 규모를 상회한다)의 세금을 충분히 조달할 수 있다.

결국 한국의 보수 여야는 자본주의체제를 ‘금과옥조’로 여겨 그것의 영구적인 보호를 위해 복지 전쟁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신자유주의가 활개를 치는 세계에서 어떤 선진국에서 조차도, 지금의 한국처럼 ‘때늦은’ 복지국가 논쟁을 벌이고 있지 않다. 한국의 재벌 자본을 포함해 세계의 초국적 자본은 한국 정치권의 복지 논쟁을 단지 ‘선거용’ 캠페인 정도로 여길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보수 정당들은 복지정책을 주요 선거 이슈로 정해 복지특위 등을 만들고 있으나, 그 열기는 올해 정기국회가 소집될 무렵에는 신자유주의 원리에 반하는, 보다 정확히 말하면 자본의 이윤과 축적 원리에 어긋나는, 그 어떤 복지 담론도 크게 활력을 받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 보수정치권의 생리이며 한계이다.

지금 현 정권도 복지를 국방, 외교, 인사, 경제 등보다 후순위의 이슈로 돌리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벌써부터 후광을 잃고 있다. 보수 정치가 노리는 복지 담론은 결국 개인주의, 자유주의 나아가 공리주의를 옹호하고 유포시키는 논리이다. 지금 자본주의의 모순과 대립을 대중 일반에게 알려 여론의 방향을 좌로 기울게 하려면 복지 문제보다 ‘근본적인’ 문제인 일자리 감소, 비정규직 등 불완전 노동 증가, 주택난·전세 대란, 물가 고공행진 등에 대한 즉각적인 정책을 강구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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