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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촉즉발, ‘마리’를 가다
명동 재개발 반대 농성 중인 카페 마리, 18, 19일 철거 용역과 대치
박종주 기자 메일보내기

△ 세입자들이 철거를 저지하기 위해 골목길을 막고 피케팅을 하고 있다.
ⓒ 프로메테우스 박종주
서울 명동 성당 바로 앞, 을지로 2가에는 ‘마리’라는 이름의 유명한 카페가 있다. 멋진 인테리어나 맛 좋은 커피로 유명한 것은 아니다. 끊임없이 모여드는 사람과 그들이 연주하는 음악, 올 때마다 한 짐씩 싸들고 오는 후원 물품, 방명록이나 자보에 써 놓고 가는 한 마디씩의 메시지들―‘사랑과 연대’로 유명한 카페 마리는 지금 서울 한복판에서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농성장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마리는 한 때 커피를 비롯한 다양한 음료를 팔았고, 사람들은 잠깐씩 들러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다. 그러니까 마리는 원래, 평범한 카페였다. 그랬던 마리가 농성장이 된 것은 재개발 사업 때문이다. 마리를 비롯해 ‘명동 3구역’의 상점들은 몇 개월 치의 영업 이익 정도만을 받고서, 짧게는 몇 년에서 길게는 이십 년을 넘게 이어 온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오징어 식품, 카페 마리, 한 잔 하세, 부산 오뎅…재개발 사업으로 거리에 나앉게 된 명동 3구역 상점들의 이름이다. 지난 6월 14일 강제 퇴거를 당한 이들은 카페 마리에 들어가 농성을 시작했다. 경비 용역들이 몰려 와 농성장에서도 이들을 한 번 끌어내었지만, 300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려와 연대해 준 덕에 농성장을 되찾을 수 있었다.

비슷한 수준의 인근 상권으로의 수평 이주를 요구하며 농성을 시작한 명동3구역재개발대책위원회 소속 상인들에 더해, ‘명동해방전선’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지지자들은 마리와 신세계분식, 토속마을, 이렇게 세 개의 상점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한달 째 농성을 이어오고 있다.

농성이라는 것은 지치고 피곤한 일이지만, 좋은 사람들과 함께 종일을 보낼 수 있다는 점에서 꼭 힘든 일만은 아니다. 그랬던 마리에, 지난 주부터 옆 건물 철거가 시작되면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농성장이 있는 건물을 유지한다고는 해도, 주위의 건물들이 모두 철거되면 물리적으로도 심정적으로도 고립상태에 놓이게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시행사에서 오래된 건물의 석면 제거 관련 안전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은 탓에 세입자들을 비롯한 인근 지역 시민들의 항의와 구청, 고용노동청의 감독으로 첫 번째 철거는 일단락되었지만, 어디까지나 일단락일 뿐이었다. 두 번째 철거가 예정돼 있었던 18일과 19일 이틀 동안, 마리에 머물면서 현장을 취재했다.

난무하는 폭력

세입자들은 18일 새벽 네 시 경부터 철거 대상 건물이 있는 골목 앞에서 연좌 농성을 시작했다. 일곱 시가 조금 못 된 시각, 새벽의 한기와 어둠이 가시고 출근 인파가 도로를 메우기 시작할 무렵, 세입자들의 앞으로 중장비 한 대가 도착했다. 세입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중장비를 막아섰고, 농성에 함께 하고 있는 이들은 철거 대상 건물 입구 앞에서 철거 인력 투입을 막기 위한 스크럼을 짰다.

△ 철거 현장 철문을 막고 서 있는 경비 용역 무리. ⓒ 프로메테우스 박종주
이윽고 골목에는 시행사에서 고용한 경비 용역 인력들이 모습을 나타냈다. 흰 티셔츠에 청바지를 맞춰 입은 그들은 큰 덩치와 험상궂은 표정에 더해, 험악한 말들로 세입자들을 위협했다. 때를 맞추어, 조금 떨어진 농성장 마리 앞에서 용역들이 배치되었다. 마리를 지키기 위해 농성장에서 밤을 새고 아침을 맞은 사람은 40명 안팎, 이들을 끌어내기 위해 고용된 용역은 70명가량이 되었다.

세입자들이 중장비의 진입을 막았지만, 현장 노동자 개개인의 출입까지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대책위 배재훈 위원장은 “공사를 재개하면 구청에서 미리 알려 주고 석면 제거 관련 조치 결과를 확인시켜 주겠다고 했다”며 항의했지만, 철거 업체 관계자는 “구청에 가서 따져라, 문제가 있으면 우리는 벌금을 내면 된다”며 사람들이 막고 선 정문을 피해 뒤쪽 펜스를 넘겨 인력을 투입했다.

△ 용역들에게 들려 나오는 배재훈 위원장. ⓒ 프로메테우스 박종주
이를 막기 위해 현장 안으로 들어 배재훈 위원장이 들어가자, 밖에서 골목을 막고 있던 경비 용역들은 완력으로 스크럼을 뚫고 들어가 배재훈 위원장을 제압했다. 이들은 십수 명의 용역들에게 팔다리를 들여 끌려 나오던 배재훈 위원장이 완강히 저항하자 탈진하자 바닥에 눕혀 놓고는 “어르신 추우시겠다, 철근 몇 개 덮어드려라”라며 조롱하기도 했다. 인간에 대한 예의 같은 것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스크럼을 짜고 용역들을 막다 몸싸움 과정에서 다친 한 사람이 발목을 잡고 쓰러졌을 때에도 용역들은 “쥐가 난 것”이라며 비웃었다. 부상자가 오랫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구급차가 오는 등 사태가 심각해 보이자 태도를 바꾸며 상태를 묻기도 했지만, 이후에도 폭력적인 충돌은 계속되었다. 이 부상자는 인대를 다쳤다는 진단을 받고서도 목발을 짚은 채 다시 농성장을 찾아 용역들과 대치하다, 다시 넘어져 밟히는 바람에 더 큰 부상을 입었다.

△ 여성 참가자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던 용역들이 “이렇게(치마 아래에서) 찍어야지”라고 말하며 웃고 있다. ⓒ 프로메테우스 박종주
한편, 여성 참가자들에 대한 용역들의 성폭력도 심각했다. 이미 지난 번 강제 퇴거 당시 여성 세입자를 남성 용역이 들어 안아 밖으로 끌어내면서 가슴에 손이 닿은 성폭력 사건에 대해 고소가 걸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용역들은 여성 농성자를 촬영하면서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발언을 거리낌 없이 내뱉었다. 자신을 겨냥한 촬영 과정에서 용역들이 음담패설을 주고 받는 것을 직접 들은 한 여성 농성자는 이를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서에서 용역들의 비디오 촬영물을 확인한 결과 여성들의 얼굴과 신체 부위를 클로즈업해 장시간 촬영한 장면들이 다수 발견되었다.

시행사와 경찰의 카르텔

경비 용역 인력들의 폭력이 난무하는 가운데, 경찰은 이를 저지하기는커녕 방관한 것으로도 모자라 농성 참가자들을 막는 데에 긴밀히 공조했다. 도로를 막고 연좌하고 있는 세입자와 농성참가자들에게 “불법집회를 중단하라”고 요구한 경찰은, 용역 인력들이 도로를 막고 세입자나 농성자들은 물론 기자와 일반 행인들의 통행까지도 차단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제를 가하지 않았다.

성폭력 사건에 대응하는 경찰들의 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소를 위한 경찰 조사 과정에 피해자와 동석한 대리인 등에 따르면 경찰은, 성폭력 상황이나 피해자의 수치심에 대해 묻기보다는 피해자의 농성 참여 동기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물으며 해당 사건을 성폭력 사건이 아닌 철거 반대 농성장의 해프닝쯤으로 여기고 성가셔하는 태도를 보였다.

뿐만 아니라 경찰은 세입자들에게 “남의 집 앞에 서 있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말을 하기도 했다. 용역들은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중장비만이 도착해 세입자들과 대치한 19일 현장에서 경찰은 또한 “시행사가 여기에 들이는 돈이 하루에 1억”이라며 시행사 내부 상황에 대한 지식을 드러내기도 했다.

19일 당시 현장에서 세입자들에게 농성 중단을 종용하던 한 경찰에게 사람들이 신분 확인을 요구하자 “(성명과 직급을)말하기 싫다, 내가 왜 말해야 하느냐”며 반문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신분을 밝히지 않으면 얼굴이라도 기록해 두겠다”이 사람들이 사진기를 꺼내자 이 경찰은 “예, 많이 찍으십시오, 선생님”이라며 연신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등 노골적으로 농성단을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 용역들의 폭력 행사를 방관하고 있는 경찰에게 배재훈 위원장이 항의하고 있다.
ⓒ 프로메테우스 박종주
이렇다 할 충돌이 없었던 19일 상황에서 연좌 농성을 해산시키기 위해 현장을 찾은 남대문 경찰서 경비과장은 “허가된 장소에서 집회를 진행하라”는 요구에 따라(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세입자들은 마리 인근의 인도 전부에 집회 신고를 해 두었다.) 세입자 등이 인도로 옮긴 후에도 계속 해산을 요구했고, 세입자들이 이에 대해 근거를 요구하자 “이 공사는 합법”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재개발 사업을 위한 철거 공사가 합법인 것은 사실이라고 해도, 이에 항의하는 기존 세입자들과 시행사 사이에서 중재 노력을 하기는커녕 세입자들이 집회를 열 자유까지도 제한하는 태도는 편파적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경찰이 시종일관 이런 태도를 보인 탓에 곳곳에서는 “경찰과 용역은 한통속”이라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인권은 없었다

재개발 사업 앞에서 인권은 없었다.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빼앗긴 상가 세입자들의 영업권, 즉 생존권이 보장되지 않는 점이야 말할 것도 없고, 농성에 참여하고 있는 이들의 집회결사의 권리, 안전의 권리 등도 눈곱만큼도 보장되지 않았다. 나아가, 그런 상황 속에서 일하는 철거 노동자들의 인권 또한 전혀 보장되지 않고 있었다.

△ 펜스를 넘어 현장으로 들어가는 노동자(왼쪽)와 안전장비 없이 2층 높이에서 펜스 설치 작업을 하고 있는 노동자(오른쪽). ⓒ 프로메테우스 박종주
18일, 세입자들과 시행사가 대치하고 있는 가운데 현장에 투입된 노동자들은 관리자들의 종용으로 현장 옆쪽 펜스를 넘어 들어가 작업을 진행했다. 펜스를 넘는 과정에서 한 노동자는 자신의 키로는 쉽사리 타고 넘을 수 없는 펜스 기둥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공구를 이용해 즉석에서 발판을 만들고 현장으로 들어가야 했다. 19일 현장에서 역시 노동자들은, 석면 제거 관리를 위한 펜스 보강 작업을 아무런 안전 장비가 없는 상태에서 진행했다.

세입자와 농성 참가자들에 대한 용역들의 폭력을 방관했던 경찰은, 이토록 위험한 작업 환경에 대해서도 전혀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수많은 행인들이 지나는 서울 한복판, 그것도 수십 명의 경찰이 배치된 곳에서 자신의 인권을 보장받은 이라고는 업체 관리직들밖에는 없어 보였다.

경찰이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자 용역들은 기세등등했다. 곳곳에서 성폭력적 발언을 하고 농성 참가자들을 욕설을 섞어 가며 위협한 것은 물론, ‘PRESS’ 완장을 걸고 있던 기자에게도 갑자기 “사진 제대로 찍어라, XX놈아”라고 반말과 욕설로 시비를 걸어 왔다. 농성 참가자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상황에 침묵으로 일관한 경찰은 “길가에 사람이 앉아 있어 불편하다는 신고가 들어 왔다”며 마리 농성장에 찾아와 주의를 주고 가기도 했다.

사랑과 연대, 대책이 필요하다

을지로에서 마리를 향해 난 길에는 “여기서부터는 명동해방전선입니다. 사랑과 연대를 두고 가세요.”라는 문구의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농성장을 찾는 방문객들, 그리고 마리 앞을 지나가는 행인들에 대한 당부다.

지지자들의 제안에 따라 얼마 전부터 후원 계좌를 열어두고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금전 지출은 전부 세입자들이 사비를 털어서 하고 있다.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는 농성, 자칫하면 세입자들이 거리로 나앉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사랑과 연대가 필요한 상황, 마리에는 오늘도 끊임없이 후원물품을 실은 택배 차량이 도착하고 있다.

△ 용역들에게 들려 나온 배재훈 위원장이 분에 겨워 울먹이며 행인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프로메테우스 박종주
배재훈 위원장은 집회에서 마이크를 잡았을 때에도, 마리에 찾아온 방문객들에게 상황을 설명할 때에도, “건설 자본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개발 이윤을 창출하는 데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기존 주민이나 세입자들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 이주 후의 상가 입주를 위한 권리금이나 인테리어 비용 등이 보상되지 않으면 사실상 생계가 끊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비슷한 상권으로의 수평 이주가 가능하려면, 말 그대로 ‘비슷한 상권’이 인근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곳곳에서 재개발이 진행되어 지대가 끝없이 치솟는 요즘과 같은 때라면, 궁극적인 의미에서 ‘인근’으로의 이주는 불가능하다. 서울 도심의 주거 세입자들이 재개발이 진행됨에 따라 서울 외곽으로, 다시 수도권의 위성도시로 밀려나는 현상을 볼 때, 상가 세입자들 역시 같은 처지에 놓일 위험을 간과할 수 없다.

△ 세입자들이 철거를 막기 위해 중장비 위에 올라가 있다.
ⓒ 프로메테우스 박종주
당장에는 ‘용역 깡패’들의 폭력 행사를 차단하고, 시행사들이 현실적인 보상을 하게하는 제도를 요구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어느 정도’에 그칠 뿐이다. 궁극적으로는 재개발 정책과 지대 관련 정책의 획기적인 변화가 있지 않고서는, 결국 ‘수평 이주’라는 요구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상황에 이르게 될 것이다.

‘사랑과 연대’가 필요하다. 농성장 마리에 찾아오는 개인이나 단체들의 사랑과 연대에 그치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사회에 대한 사회의 사랑과 연대 말이다. 용산과 두리반, 세간을 뒤흔들었던 굵직한 재개발 관련 이슈 직후에 명동 재개발 문제가 불거진 것은 한 편으로 이들에게 행운이지만 한 편으로는 씁쓸한 이 사회의 단면이다. 용산과 두리반에 연대한 이들이 명동으로 금세 다시 모이고 있어 한편으로는 희망적이지만, 달리 생각하면 여론을 달군 사건들이 있었음에도 제도적인 변화는 전혀 없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명동이 투쟁해 승리하면, 새로운 좋은 선례를 남기고 또한 하나의 분기점이 되어 제도적 변화도 바랄 수 있을 것”이라는 배재훈 위원장의 입버릇처럼, 이번에야말로 ‘하나의 승리’를 넘어서는 사회적 변화가 도출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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